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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읍시 신태인읍 이야기

정읍시 신태인읍 이야기


가.신태인의 역사적 근거

 신태인이라는 지명에는 3개의 역사가 담겨있다. 첫째로는 인의현, 두번째로는 태인현, 세번째로는 신태인읍이다. 지금의 신태인읍은 화호와 읍소재지 그리고 옛 인의현터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신태인의 전신은 인의현이다. 백산은 부안군 백산면과 김제시 백산면이 있고, 정읍시 신태인읍 백산이 있다. 백산의 백은 성을 뜻한다. 신태인 백산은 다르게 잣매(그 지역에서는 잠매라고 부른다)라고 하는데 잣은 城의 고어이다. 또한 백산은 술잔을 엎어 놓은 형상이라고도 하는데, 익산시 배산이 바로 잔盃자를 쓴다. 대개 배산은 성이 있는 산이며 바다와 접해 있던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인의현터인 백산에는 성지가 있고 삼국시대의 고분도 이웃해 있다. 또한 향토유적인 소이암지석탑이 있으니 이 적석탑은 마이산 탑사의 주인공인 이갑용처사가 쌓았다고 전해진다. 백산의 남서 방향으로는 동진천(태인천)이 흐르고 북동 방향으로는 모악산의 지맥인 천아산이 위치하고 있다. 山으로서의 백산은 신태인읍 백산과 태인면 박산을 접하고 있는데, 본래 태인면 박산리에 속했던 곳이 분리되어 그 일부가 신태인읍에 편입되어 백산리가 되었다. 이암마을 언덕에 있는 귀바위는 고인돌로 판단되며, 인접한 태인면 박산리 언덕에 있는 암수바위, 들판 건너 자리한 정토산 주변의 회룡마을 칠성바위 고인돌과 산북마을 칠성바위 고인돌과의 연관성이 추정되고 있다.

 백산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면 두다리목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두개의 다리가 있고, 자수라는 글자가 새겨진 제수문이 있으며, 삼거리슈퍼가 있는 것으로 보아 한때는 삼거리였다가 새로 큰길이 생기면서 사실상 오거리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30번 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두다리를 건너면 광선축산이라는 도축장이 있고, 구암제수문이 있다. 두다리목에서 30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면 첫번째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곧장 신태인공단이 나오고, 두번째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한참을 가면 감곡면소재지가 나오고, 세번째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감곡역으로 가는 길이며, 네번째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화호가 나오고, 화호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김제시로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정읍- 부안- 김제가 만나는  군포교가 나온다. 화호가 한때 부흥했던 이유는 대규모 일본인농장에 근거를 둔 탓도 있지만 그곳이 정읍-부안-김제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이자 물산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알려진 대로 부안군 백산은 통일신라의 對唐 해상루트로서 동진강을 통해 동진만으로 빠지거나, 고부천을 이용해 줄포를 거쳐 부안바닷가로 나가는 관문으로 기능했다. 이후 김제만이가 육지로 바뀌는 등의 변화가 있음으로 해서 백산의 해상루트는 종말을 맞이했으나, 중요한 역로였던 정읍(고부군) 영원역- 김제   역에 접해 있던 화호가 부상하게 되었다. 화호에는 한때 화호병원이 있었고 두개의 지서가 있었으며 큰 시장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그 역할은 신태인에게 넘어가고 말았으니.....

나. 정미소 거리와 신태인역

화호에서 신태인읍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이다. 최근 도축장을 짓고 있는데 그곳을 지나면 삼거리가 나온다. 그 삼거리에서 죄회전하면 감곡- 태인 분기점이 나오고, 직진하면 이평으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그 삼거리는 신태인의 대표적인 방앗간 거리이다. 한때  그곳에서 철도 있는 곳까지 모두 9개소 정도의 정미소가 늘어서 있었는데 지금은 삼거리에 3개소가 남아 있다. 일본인이 정미소를 운영하면서 쓰던 일식집이 지금은 내부가 일부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다. 떡방앗간이 3개소 있으며, 다방이 있고 동네점방이 하나 있다. 그밖에도 대형의 농자재 판매점이 있고, 도정공장 수준의 현대정미소 내에 단풍미인쌀 전시 판매점이 있다. 닫힌 식당이 눈에 띄고 육교 아래에는 콘크리트벽돌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육교를 건너면 좌측에 천주교 신태인성당이 있고, 좌측으로  약간 굽어서 진행하면 터미널로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신태인농협과 신태인역이 나온다. 그곳에서 좌회전하면 읍사무소(우측)가 나오고 신태인종합상가(좌측)가 나온다. 상가 건물 뒤에는 과거 창고로 사용하던 오래된 건물이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읍사무소 우측으로 가면 유명하던 신태인도정공장이 폐허를 보여주고 있는데 두개의 높다란 굴뚝이 인상적이다. 특히 온통 넝쿨이 뒤덮고 있는 굴뚝은 일대 장관을 이룬다. 바로 이웃한 곳은 주요 상권으로서 신태인시장이 자리하고 있고, 장날이면 노점상들이 읍사무소 건너편에서 역과 농협 앞까지 주로 진을 치고 나머지는 신설 도로 상권지대에 자리를 펼친다.

 역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면 정우면으로 가는 길이다. 도수로 직전의 오른쪽에는 천도교신태인본부가 있고, 도수로 건너 좌측에 왕신여중고가 자리한다. 왕신학원에서 읍사무소 쪽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신태인초등학교가 있고, 좌측에는 신태인 우체국이 있다. 신태인 우체국은 주변 이평... 태인까지 관할하고 있다.

 왕신여고를 지나면 신태인실내체육관이 나오는데 이 근처가 바닷물이 돌아나가던 곳으로서 일명 돌구지(석구지)인데 이는 화호의 숙구지와 함께 곶(육지가 길게 뻗어 나간 곳)에 해당한다. 석구지와 돌구지라는 지명은 바닷물이 돌아나가던 곳이라는 뜻으로 판단된다. 이곳에서 이웃한 정토산 앞과 태인 낙양리 근처까지는 감조지대로 추정되며 이로인해 사람이 일찌기 정착하였기에 고인돌이 주변에 산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30번 도로가 예전에는 중로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동진강을 따라 이어지면서 인의현-(태인현)-태산현이 문명개화한 것으로 판단된다.(신태인의 주요한 근거 중의 하나는 동에서 서로 흐르는 동진천이다.)

다. 신태인의 도시 나이는 몇살?

 도시도 나이가 있다. 경주는 천년이 넘었고, 어떤 도시는 쇠퇴하여 거꾸로 나이를 먹기도 한다. 신태인읍은 나이를 먹다가 성장을 멈추어 버렸다. 이토록 오랫동안 읍으로 연명하기도 힘들다고 할 것이다. 오랫동안 열 일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도읍이 바로 신태인읍이다. 신태인은 태인과 이평 말목장과 화호시장을 흡수한 예라 할 수 있다. 말목장과 화호장은 사라졌고, 태인장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신태인에 많은 상권을 뺏긴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일제의 미곡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이 끝나고 기차역도 그 기능이 약해진 가운데 터미널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만치 낙후된 상태이다. 극장도 사라지고 ......

 부안- 칠보간 자동차전용도로신설이 미칠 여파는?

 농업의 후퇴속에 농공단지가 세워져서 사료 회사 2개 공장을 비롯한 여러 공장들이 가동되고 있고, 공단 바로 앞에 장례식장이 설립되었다.

 주공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주민들의 거주와 상권에도 여파가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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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6 17:00 2008/05/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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