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례(喪禮)에 대해서
어머니의 기일때면 어버지와 상례에 관해 이야기하게 된다. 항상 하시는 말씀은 제사의미란 제사자의 마음에 있으며
형식과 절차 그리고 준비하는 음식의 부족과 넘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제사의 의미는 돌아가신 분을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하고 애모의 정을 다하는 것이란 말씀이시다.
그런데 아버지는 항상 제사상에 오르는 음식의 배열에 대해서는 조심하시고 내가 기억 못함을 나무라신다.
우리집은 큰집에서 종교적인 문제로 제사를 지내지 않아 나는 전통적인 방식의 제사 절차에 대해 잘 모른다. 어머니가
몇해 전에 돌아가셔서 제사를 모셔야 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제사상 차림에 대해서는 헷갈리기 일쑤다.
반서갱동, 적전중앙, 좌포우혜, 어동육서, 동두서미, 조율이시, 홍동백서... 첫째줄엔 무엇이 놓여야하고
다음줄에 어떤 음식이 놓여야 하는지 항상 혼란스럽다. 또 동쪽과 서쪽은 제사자 입장에서인지 잡수시는
분의 입장에서의 방위인지 도통 기억되지 않는다. 제사상 차림이 일년에 서너번 밖에 없어 몸으로 기억되기엔
횟수가 너무 적다. 방법은 머리로 외워야 하는데 그것이 잘 안된다. 그렇다고 의미 절차나 형식 보다는
마음이지 않느냐고 아버님께 차마 말씀은 못드리고 그저 허둥댈 뿐이다.
어떤 儀式에 있어 절차란 것은 그 儀式의 의미를 새기고 그것을 참여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儀式에 일정한 절차가 없으면 그 儀式은 변질되기 쉬우며 또한 참여자들을 한 뜻으로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절차를 만들내고 그것을 준수하도록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儀式은 전통이 되어 오랜 세월 사람들 사이에 살아남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의례도 후대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의례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의미
체계이다. 때문에 의미가 유지되면서 형식과 절차만이 시대 상황에 따라 변형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의미 보다는 형식과 절차만이 강조되어 본래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것에 있다. 절차와 형식은 의미체계와
함께 할때 유효한 것이다. 절차와 형식만의 변형은 의례의 의미체계를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
한번쯤은 내가 행하고 있는 의례의 근원을 따라가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것이 형성되었던 초기의
의미를 되새김으로서 형식과 절차에 담긴 뜻을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그것의 현대적 의미를 재부여 할수 있게 된다.
다음은 "중국철학사 (풍우란)"에서 상례 부분을 발췌한 내용이다. 상례의 절차와 형식이 갖는 의미를 이해 하는데
아주 좋은 내용이다.
[예기]에서 상례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례란 지극한 슬픔과 비탄에 처하여 슬픔을 절제하고 변고에 순응하는 의식으로, 군자가 존재의 시원을 추념하는
의식이다.초혼(復 : 招魂 사람이 죽은 직후에 높은곳에 올라 천을 흔들며 죽은사람의 혼을 부르는 행위)은 애모의 정을 다하는
도리인데, 신명에 고하여 죽은 사람의 회생을 비는 기도와 제사의 마음이 담겨있다.......죽은사람의 입에 쌀과 패물을
넣는 것은 차마 비워 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식사때의 방식을 따르지 않음은 다만 보기 좋게 하는 것일 뿐이기때문이다.
명정(銘 : 銘旌 죽은사람의 관직과 성명을 쓴 기)이란 신명의 기이다.
죽은 사람은 분별되지 않기 때문에 기로써 표시하는 것이다.
사모하므로 기록하는 것이고 공경하므로 거기에 도를 다하는 것이다......전(奠: 장례 전에 드리는 제사)에는 장식이 없는 그릇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산 사람(상주)이 슬품에 젓어 예의를
갖출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제사의 예란 오직 상주 스스로의 정성을 다하는 것일 뿐, 어찌 신령이 흠향하는지를 알겠는가?
오직 상주는 엄숙하고 삼가는 아음에서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또한 부모가 돌아가면 사흘 후에 염(殮)을 하는데 이것의 의미를 [예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효자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슬프고 애통하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기 문에 시신 곁에 엎드려 통곡하여 마치 다시
살아날 것처럼 한다. 그러니 어떻게 그로부터 시신을 빼앗아 염을 할수 있겠는가? 따라서 사흘 후에 염을 한다고 함은
그때까지 회생을 기다린다는 말이다. 사흘 후에도 소생하지 않으면 회생하지 않는 것이므로 효자의 마음은 더욱 애통해 진다.
또한 사흘이면 집안 살림의 회계나 의복등의 준비가 다 되고, 먼 곳의 친척들도 도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인께서 결단을
내려 사흘로 예제(禮製)를 삼으신 것이다.
3개월 후에 장례를 하는 의미를 [예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사는 말했다.
"상을 당한지 사흘 후에 빈례(殯 : 시신을 관에 넣어 정한 장소에 안치)를 행한다. 시신에 부속되는 모든 것을 마련하는데
성심성의를 다하여 후회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빈소에 안치시키고 3개월이 지난 후에 장례를 행한다."
또한 순자는 말했다.
"빈소에 모셔 두는 기간은 길어도 70일을 넘어서는 안되고, 빨라도 50일보다 적어서도 안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먼 곳의 친척들도 모두 도착하고 온갖 준비물도 갖추고 모든 일이 완성되기에 알맞은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정성은 지극한 것이고 예절은 성대한 것이고 격식은 완비된 것이다. 그리하여 초승에 묘자리를 잡고
그뭄에 장례날을 택일 한 다음 장례를 행한다"
장례 후에 곡을 하면서 돌아오는(反哭)의 의미를 [예기]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육신을 떠나 보낸 다음 혼백을 맞아서 돌아 온다.떠나 보낼 때에는 사모의 정에 사무쳐 넋을 잃고, 마치 할 수만 있다면
그 뒤를 붙좇아 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처럼 한다. [장례를 마치고] 곡을 하며 돌아 올 때에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여 마치 [돌아가신 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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